헤르만 헤세와 데미안 싯다르타 이야기 42살이 젊은 작가 행세를 한 이유 | 노리노리

헤르만 헤세와 데미안 싯다르타 이야기 42살이 젊은 작가 행세를 한 이유

데미안의 첫 문장이에요.

"나는 나로부터 나오려고 했던 것, 그리고 저절로 나오려고 했던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소설은 처음에 헤르만 헤세가 쓴 게 아니었어요. 에밀 싱클레어라는 젊은 작가의 이름으로 출간됐어요. 1919년, 42살의 헤세가 필명을 쓴 거예요.

42살이 젊은 작가 행세를 한 이유가 있어요. 그리고 그 이유가 이 작가를 이해하는 첫 번째 열쇠예요.


항목 내용
출생~사망 1877~1962년 (향년 85세)
국적 독일 출생 / 1923년 스위스 국적 취득
수상 1946년 노벨문학상 (유리알 유희)
특징 동서양 사상 통합, 내면 성찰, 자아 찾기
한국 데미안·싯다르타·수레바퀴 아래서 뮤지컬화 (2020년대)

42살의 헤세가 필명을 쓴 이유

나무위키에 따르면 데미안을 발간하기 전 헤세는 1차 세계대전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어요. 전 세계 예술가들이 전의를 고취하는 작품을 쏟아낼 때 헤세는 반전(反戰)의 편에 섰거든요.

그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매국노, 배신자라는 오명을 받았어요. 아내와도 이혼했고, 개인적으로 극심한 위기를 겪고 있었어요.

그 상태에서 데미안을 썼어요. 헤세라는 이름으로 내면 팔리지 않을 것 같아서 에밀 싱클레어라는 필명을 썼어요.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고, 나중에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 화제가 됐어요.

(산전수전을 다 겪은 42살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집필한 자서전 격 소설이에요. 그게 데미안이에요.)


헤세 소설의 공통점이 뭔지를 보면

나무위키에 따르면 헤세는 동서양의 사상과 인간 내면의 성찰을 깊이 있게 탐구한 작품들로 20세기 독일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대문호예요.

조부모와 부모가 인도에서 선교사로 살았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동양 사상에 친숙했어요. 쇼펜하우어 철학을 탐독하면서 불교와 인도 철학으로 나아갔고, 그 사상이 싯다르타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났어요.

데미안이 서양 심리학(융)의 영향을 받았다면, 싯다르타는 동양 사상(불교)의 영향을 받았어요. 같은 작가가 두 방향을 탐구한 거예요.

(그 두 방향이 사실 같은 곳을 향하고 있어요. 자신을 찾는다는 것, 그게 헤세 소설의 중심이에요.)


대표작들이 어떤 소설인지를 보면

수레바퀴 아래서 (1906) — 헤세의 초기 대표작이에요. 엄격한 교육제도 속에서 짓눌린 한 소년의 이야기인데, 헤세 자신의 학창 시절이 반영되어 있어요. 신학교에 입학했다가 도망치고 자살 미수까지 경험한 헤세의 자서전적 소설이에요.

데미안 (1919) — 헤세의 전환점이 된 소설이에요. 에밀 싱클레어라는 필명으로 출간됐고, 청년 운동의 성경이라고 불릴 만큼 젊은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었어요.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는 문장이 이 소설에 있어요.

싯다르타 (1922) — 헤세의 동양 사상이 가장 선명하게 담긴 소설이에요. 불교를 배경으로 하지만 종교소설이 아니에요. 진리는 말로 가르칠 수 없다는 헤세 자신의 세계관을 담은 소설이에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1930) — 두 남자의 삶을 대비하는 소설이에요. 금욕적 정신의 나르치스와 방랑하는 예술가 골드문트. 두 가지 삶의 방식이 어떻게 서로를 필요로 하는지를 그려요.

유리알 유희 (1943) —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이에요. 헤세의 마지막 장편이자 가장 방대한 소설이에요.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정신과 예술의 가치를 탐구해요.

(데미안과 싯다르타를 순서대로 읽으면 헤세가 서양에서 동양으로 사상적 여정을 걷는 과정이 보여요. 두 소설 모두 결국 같은 질문을 하고 있어요. 나는 누구인가.)


헤세가 한국에서 특별히 많이 읽히는 이유

데미안은 지금도 한국 출판시장에서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예요. 입시의 압박을 받는 청소년들, 정체성을 찾아가는 20대들에게 싱클레어의 이야기가 계속 닿는 거예요.

2020년대 들어서는 데미안,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수레바퀴 아래서가 잇달아 뮤지컬로 만들어졌어요. 소설이 무대 위로 올라와도 공감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100년이 지나도 헤세 소설이 읽히는 이유는 단순해요.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은 시대가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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