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영화에서 좀비는 보통 적이에요. 피하거나 죽여야 하는 존재죠. 그런데 조예은의 소설에서 좀비는 아빠예요. 그것도 아직까지 생전의 행동 패턴을 반복하는, 이상하게 낯익은 아빠요. 매일 아침밥 때가 되면 식탁 앞에 앉아 먹지도 못하는 밥을 내놓으라며 시위하는 좀비 아빠. 읽다 보면 슬픈 건지 웃긴 건지 모르게 되는 순간이 와요. 그리고 그 감각이 조예은 작가의 소설이 다른 이유예요.
| 항목 | 내용 |
|---|---|
| 저자 | 조예은 |
| 출간 | 2020년 4월 (안전가옥) |
| 장르 | SF 호러 / 단편소설집 |
| 시리즈 |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 2권 |
| 구성 | 총 4편 수록 (초대 / 습지의 사랑 / 칵테일, 러브, 좀비 /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
| 알라딘 별점 | 8.7 / 10 |
| 드라마화 |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 2023년 KBS 단막극 |
조예은이라는 작가
1993년생이에요. 금속공예학과를 졸업했어요. 2016년 황금가지 타임리프 공모전에서 단편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로 우수상을 받으면서 데뷔했고, 이후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어요.
조예은 소설의 색깔은 분명해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 오컬트와 SF의 결합, 여성 인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구조적 폭력. 그런데 그 어두운 배경 위에 섬뜩하고 경쾌한 호러 스릴러에 해피엔딩 한 스푼을 곁들인 '조예은 월드'라는 평가처럼, 읽고 나서 무기력해지기보다 이상하게 통쾌한 기분이 드는 소설들이에요.
작가 스스로 "안 좋은 환경 속에서도 살아야 한다는 것, 어쨌든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다고 밝혔어요. 그 말이 이 소설집 네 편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수록작 하나씩 들여다보기
〈초대〉 — 17년째 목에 걸린 가시
채원은 17년째 목에 가시가 걸려 있어요. 어릴 때 어른들이 억지로 생선을 먹인 이후로 생긴 증상인데, 병원에서도 원인을 못 찾는 이유 없는 통증이에요. 그 채원의 남자친구 정현이 어느 날 이렇게 말해요. "내 친구들이 너를 보고 싶어 한다면서" 횟집으로 불러요.
평범하게 지내던 사람이 가스라이팅에 잠식되어 가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다룬다. 가해자의 화법은 아주 교묘해서, 채원뿐만 아니라 독자들도 화를 낼 타이밍을 잡기가 어렵다. 독서신문의 리뷰처럼 이 소설의 무서운 점은 폭력이 눈에 잘 안 보인다는 거예요. 그러다 어느 순간 독자도 채원처럼 '이게 이상한 건가?'를 의심하게 돼요.
결말에서 채원은 손에 뭔가를 쥐게 돼요. 이 소설집에서 '여성 빌런의 탄생'을 다룬다는 표현이 딱 맞는 작품이에요.
〈습지의 사랑〉 — 물귀신과 숲귀신의 연애
설정 자체가 너무 귀여워요. 하천에 빠져 죽은 물귀신은 매일이 지루해요. 발목을 잡아끄는 게 유일한 낙이었는데 소문이 나서 이제 사람들이 오지 않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건너편에 숲귀신을 발견해요.
물귀신은 숲 쪽으로 갈 수 없고, 숲귀신은 물 쪽으로 올 수 없어요. 그래서 둘은 먼발치에서 대화만 해요.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범람하는 날만 기다리는 물귀신. 이 소설집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이야기예요. 그런데 결말이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아요. 재개발이라는 현실이 끼어들거든요.
〈칵테일, 러브, 좀비〉 — 이 소설집의 표제작
어느 날 아침 주연은 아빠가 좀비가 됐다는 걸 알아요. 좀비가 된 아빠는 생전의 행동 패턴을 반복해요. 밥 때가 되면 식탁 앞에 앉고, 주말엔 4시까지 낮잠을 자고, 평일엔 양복을 입고 출근하려 해요. 주연과 엄마는 새벽같이 일어나 좀비 아빠의 출근을 막는 전쟁을 치러야 해요.
이 설정이 블랙 코미디처럼 읽혀요. 그런데 읽다 보면 웃음이 그냥 웃음이 아니에요. 좀비가 되기 전에도 아빠는 밥상 앞에서 시위를 했고, 밥을 내놓으라 했고, 주연과 엄마는 그걸 감당해왔어요. 좀비가 된 뒤에도 달라진 게 없는 거예요. 오히려 이제 아빠를 묶어도 된다는 명분이 생겼어요.
좀비 사태의 원인이 국밥집의 뱀술로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요. 그리고 그 엉뚱함 속에서 이 소설이 말하려는 것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요. 가부장제의 이면을 오컬트 좀비물로 풀어낸 거예요.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 타임리프와 가정폭력
이 소설집에서 가장 구조가 정교한 작품이에요. 황금가지 타임리프 공모전 우수상을 받은 데뷔작이기도 하고, 2023년 KBS 단막극으로 드라마화될 만큼 완성도를 인정받은 작품이에요.
혼자 사는 여성이 밤길을 걷는 공포감, 그리고 가정폭력. 이 두 가지를 타임리프 구조로 풀어내요. 아주 정교하게 조각된 연속된 타임리프로 독자의 뒤통수를 여러 차례 때리는데, 이 과정에서 독자는 벗어날 수 없는 비극의 톱니바퀴 속에 끼여 속절없는 인물들을 보게 되며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자문하게 된다. 독서신문의 이 평가가 정확해요. 결말이 열려 있는 듯하면서도 어떤 방향으로 읽어도 씁쓸한, 그런 소설이에요.
이 소설집을 관통하는 것
네 편의 이야기가 제각각인 것 같지만 공통점이 있어요. 오랜 고통을 충분히 위로받지 못한 조예은 작가의 인물들은 어느 순간 손에 무기를 든다. 자신을 옭아맸던 사람, 그 사람을 만든 세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무기가 꼭 칼이나 총이 아니에요. 어떤 때는 좀비 아빠를 묶는 밧줄이고, 어떤 때는 요리사의 칼이고, 어떤 때는 타임리프가 되기도 해요.
비현실적인 오브제를 현실적인 배경에 자연스럽게 섞어 놓는 것은 조예은 작가의 특기다. 덕분에 독자들은 작가가 선사하는 판타지 속으로 어렵지 않게 빨려 들어갈 수 있다. 좀비물인데 가부장제를 얘기하고, 귀신 이야기인데 재개발을 담고, 타임리프인데 가정폭력을 다뤄요. 그 결합이 이 소설집이 주는 독특한 쾌감이에요.
독자들은 어떻게 반응했나
알라딘 기준 별점 8.7점으로, 독자들 사이에서 꾸준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어요.
알라딘 독자 서재에서는 "네 편 모두 짧은데 여운이 길다", "조예은 작가 입문은 여기서 하면 된다"는 반응이 많이 보여요. 특히 표제작 〈칵테일, 러브, 좀비〉에 대해 "좀비물인데 웃기다가 뭔가 찜찜하다"는 반응이 반복되는데, 그게 이 소설의 의도와 정확히 일치하는 독서 경험이에요.
아트인사이트의 리뷰에서는 〈초대〉에 대해 '나는 가스라이팅 같은 거 당하지 않을 자신 있어'라며 오만하게 굴었던 과거를 반성하게 되는 내용이라고 표현했어요. 독자들이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는 채원에게 처음에는 답답함을 느끼다가, 나중에는 자신도 모르게 같은 패턴에 공감했다는 반응들이 이 소설의 힘을 보여줘요.
한편으로 이 소설집은 분량이 짧고 (전체 165쪽) 내용도 압축적이어서, 정통 소설의 긴 서사를 기대한 독자들에게는 다소 아쉽게 느껴질 수 있어요. 또 일부 독자들은 주제의식이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는 지적도 해요. 은유보다 명확한 메시지를 선호하는 독자에게는 오히려 강점이 되기도 하고요.
이런 분께 권해요
한국 장르소설을 처음 접하는 분에게 입문서로 딱 맞아요. 짧고 빠르게 읽히면서도 읽고 나서 생각할 거리를 남겨요. 호러라는 장르를 좋아하는데 단순한 공포물보다 사회적 맥락이 담긴 이야기를 원하는 분, 또는 조예은의 장편 《트로피컬 나이트》나 《시프트》를 읽기 전에 작가의 색깔을 먼저 확인하고 싶은 분에게도 좋아요.
반대로 긴 호흡의 장편소설을 원하거나, 호러 장르 특유의 공포감보다 인물 심리 묘사가 풍부한 소설을 원하는 분에게는 조금 아쉬울 수 있어요.
좀비가 된 아빠가 여전히 밥상 앞에서 시위를 하고, 물귀신이 숲귀신에게 반하고, 요리사가 자신만의 무기를 손에 쥐는 이 소설집이 말하는 건 결국 하나예요. 어떤 안 좋은 환경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는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섬뜩하지만 따뜻하고, 기괴하지만 위로가 되는 그런 소설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