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페이지 정도밖에 안 되는 중편소설인데, 다 읽고 나서 뭔가가 오래 남는 그런 책으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딱 그런 책입니다.
무거운 것도 아닌데 가볍지도 않은 그 무게감이 이 책을 집어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각이면서, 그게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소설이 읽히는 이유인 것 같아요.
| 항목 | 내용 |
|---|---|
| 저자 | 어니스트 헤밍웨이 |
| 출간 | 1952년 (라이프지 연재 후 단행본) |
| 장르 | 중편소설 |
| 수상 | 1953년 퓰리처상 / 1954년 노벨문학상 |
| 실제 모티브 | 쿠바 어부 그레고리오 푸엔테스의 실화 |
| 분량 | 약 130페이지 |
이 책이 나온 1952년이 어떤 시절이었는지 알면 더 재미있는데,
소련이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하자 미국이 수소폭탄 제조에 돌입하던 시기였고, 냉전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한국전쟁도 한창인 채로 세상 전체가 거대한 이념 충돌 속에서 흔들리던 때예요.
그런데 헤밍웨이는 그 시점에 냉전도 핵무기도 아닌, 쿠바의 작은 어촌 노인 한 명을 썼거든요.
(세상이 극단적으로 커질수록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작은 이야기를 원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게 이 책이 라이프지에 실리자마자 이틀 만에 500만 부 이상 팔린 이유인데, 지금 기준으로도 말이 안 되는 숫자예요.
헤밍웨이 자신도 사실 산티아고였다는 게 흥미로운데,
이 소설을 쓰기 전 헤밍웨이는 오랜 슬럼프에 빠져 있었는데, 1940년대 내내 발표한 소설들이 평단에서 혹평을 받으면서 한때 '길 잃은 세대'의 대표 작가였던 그가 이미 끝났다는 말을 들어야 했거든요.
민음사 소개에 따르면 산티아고가 처한 상황과 불굴의 의지는 이 작품을 쓸 당시의 헤밍웨이 자신과 연관이 깊다고 하는데,
(84일간 아무것도 잡지 못하는 늙은 어부가 오랫동안 좋은 작품을 쓰지 못한 노작가의 자화상이었던 셈이에요.)
그래서 이 소설이 단순한 어부의 이야기가 아닌 이유가 있는 거예요.
줄거리는 이렇게 흘러가는데,
쿠바의 작은 어촌에서 살아가는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84일째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를 불운아 취급하고, 그의 어린 조수 마놀린의 부모도 이 늙은 어부 곁에 있는 걸 달갑게 여기지 않아요.
그래도 마놀린은 매일 저녁 밥을 챙겨다줬는데, 85일째 되는 날 산티아고는 혼자 더 먼 바다로 나가면서 거기서 자신의 배보다 훨씬 큰 거대한 청새치를 낚게 됩니다.
이틀이 넘도록 싸움이 이어지는데, 낚싯줄을 놓치지 않으려고 손이 찢기고,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먹을 것도 없이 혼자 버티다가 마침내 청새치를 잡게 돼요.
문제는 항구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상어 떼가 몰려오면서 작살로, 노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싸우지만 항구에 도착했을 때 배에 묶인 건 뼈와 껍데기만 남은 잔해뿐이거든요.
산티아고는 집으로 돌아가는데, 거기서 잠들고 꿈에서 사자를 보게 됩니다.
(젊은 시절 아프리카 해변에서 보았던 그 사자들이에요.)
결말이 실패인지 승리인지가 이 소설의 핵심인데,
객관적으로 보면 산티아고는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했는데, 뼈만 남은 물고기에 찢긴 손, 지친 몸으로 완전한 실패처럼 보이거든요.
그런데 헤밍웨이는 그를 패배자로 그리지 않으면서, 소설에서 산티아고는 이렇게 말해요.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물고기를 잃었지만 그 싸움 속에서 자신이 여전히 무언가와 싸울 수 있는 존재라는 걸 확인했는데, 그날 밤 꿈에서 다시 사자를 봤다는 게 그 증거예요.
(아직 꿈이 살아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헤밍웨이의 빙산 이론이 이 소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면,
헤밍웨이는 빙산의 8분의 7은 물속에 잠겨 있듯이 글도 보이는 건 8분의 1이고 나머지는 독자가 느끼게 두어야 한다는 빙산 이론으로 유명한 작가인데,
그래서 이 소설의 문장이 짧고 담담한 거거든요. 산티아고의 고통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그냥 그가 무엇을 하는지를 담담하게 쓰면서,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강하게 와닿는 방식이에요.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문장을 꼽으라면 이거예요.
"오직 두 눈만은 바다와 똑같은 빛깔을 띠었으며 기운차고 지칠 줄 몰랐다."
몸은 늙었어도 눈만은 살아있다는 걸 헤밍웨이는 딱 이 한 문장으로 말하는데,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는 게 빙산 이론이에요.)
윌리엄 포크너가 "헤밍웨이의 책에서 어려운 단어는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고 비꼬자 헤밍웨이는 "어려운 단어를 써야만 감동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라고 받아쳤는데, 그 말이 이 소설 전체를 설명하는 것 같아요.
실제 모델이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인데,
이 소설에는 실제 모델이 있는데, 헤밍웨이가 쿠바에 자주 드나들면서 친하게 지낸 어부 그레고리오 푸엔테스가 실제로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창작한 거예요.
그런데 더 흥미로운 건 푸엔테스가 2002년에 104세로 세상을 떠났다는 건데, 마지막까지 바다 곁에서 살았다고 해요.
(그 자체가 산티아고 같은 삶이잖아요.)
헤밍웨이가 수익의 일부를 나눠주려 했지만 이미 이 소설로만 그 몇십 배를 벌었기에 푼돈이라며 거절했다고 하는데, 그 태도 자체가 소설 속 산티아고와 너무 닮아있어서 인상적이에요.
지금 이 시대에 이 소설을 읽는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싶은데,
요즘 우리가 읽는 책들과 《노인과 바다》를 나란히 놓으면 눈에 띄는 차이가 하나 있는데, 요즘 책들은 많은 경우 이렇게 하면 행복해진다, 이게 성공의 비결이다 하면서 빠른 답을 주거든요.
그런데 산티아고는 아무것도 안 주는데, 84일간 아무것도 못 잡았고 마침내 잡은 것도 상어에게 뺏겼으니까요. 결과도 없고 보상도 없는데 그는 계속했거든요.
우리는 지금 결과로만 사람을 평가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데, 얼마나 빠르게 성공했는지, 몇 살에 무엇을 이뤘는지로 줄을 세우다 보니 그 기준으로 보면 산티아고는 실패한 늙은이인 거예요.
(그런데 이 소설은 그 기준 자체에 조용히 반문하는 것 같아요.)
결과를 가져오지 못해도 그 싸움이 의미 없는 건 아니면서, 오히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리에 남는 것이 있거든요. 자신이 여전히 싸울 수 있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그날 밤 꿈에서 다시 사자를 봤다는 것이요.
빠른 결과와 빠른 보상에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이 소설은 다른 방향에서 말을 거는 것 같아요. 천천히, 혼자서, 묵묵히, 결과가 없어도 꿈은 계속된다고요.
독자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알라딘 독자 서재에서 꾸준히 나오는 반응을 보면 "짧은데 오래 생각하게 된다"는 반응이 많은데, 반대로 "처음엔 지루했는데 다 읽고 나서 뭔가 남는다"는 반응도 같이 있어서 이 두 반응이 공존하는 책이에요.
특히 흥미로운 건 이 소설이 읽는 나이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는 건데, 학창 시절에 읽었을 때는 어부가 고기 잡는 이야기였는데 30대에 다시 읽으니 다른 책이 됐다는 반응이 많거든요.
경쟁에서 밀려본 경험, 오래 노력했는데 결과가 없었던 경험, 나이 들어가는 것의 감각, 그것들이 생기고 나서야 산티아고가 보인다는 거예요.
(아마 이 소설은 패배를 한 번쯤 맛본 사람일수록 더 깊이 읽히는 것 같아요.)
산티아고는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했는데, 그래도 패배하지 않았거든요.
그 차이가 7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소설이 읽히는 이유인데, 빠른 결과를 요구하는 지금 이 시대에 그 차이는 어쩌면 더 선명하게 빛나는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