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소설을 읽다 보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각이 있는데, 무겁지만 외면할 수 없는 그 무게감이 이 소설에서 가장 깊고 조용하게 내려앉아 있어요.
《채식주의자》가 한강을 세상에 알린 소설이고, 《소년이 온다》가 5·18을 담아낸 소설이라면, 《작별하지 않는다》는 그 두 소설이 걸어온 길의 끝에서 제주 4·3이라는 또 하나의 역사를 향해 손을 뻗은 소설이에요.
노벨문학상 선정위원회가 한강을 선정하며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했다"고 밝혔는데, 그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소설이 바로 이 책인 것 같아요.
| 항목 | 내용 |
|---|---|
| 저자 | 한강 |
| 출간 | 2021년 9월 (문학동네) |
| 장르 | 장편소설 |
| 수상 | 2023년 프랑스 메디치 문학상 외국문학상 공동수상 |
| 배경 | 제주 4·3사건 (1948~1954) |
| 한강 3대작 위치 | 채식주의자 → 소년이 온다 → 작별하지 않는다 |
제주 4·3이 어떤 사건인지 먼저 알면 이 소설이 달리 읽히는데,
1947년 3·1절 집회에서 경찰의 발포로 시작된 갈등이 정부의 탄압과 무장봉기로 이어지면서, 1948년부터 1954년까지 미군정과 경찰의 무차별 진압으로 약 3만 명의 제주도민이 희생된 비극이에요.
그런데 이 사건은 오랫동안 침묵 속에 가려져 있었는데,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수십 년간 제대로 이야기조차 할 수 없었던 역사예요.
(소년이 온다가 5·18을 다뤘다면, 작별하지 않는다는 그보다 32년 앞선 제주의 비극을 담은 거예요. 한강이 한국 현대사의 상처를 하나씩 끌어안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예요.)
이 소설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알면 더 인상적인데,
나무위키에 따르면 한강은 소년이 온다를 출간한 후인 2014년, 실제로 악몽을 꿨다고 해요. 그 악몽 속에서 만난 이야기가 이 소설의 출발점이 됐는데,
한강은 그것을 두고 "작별을 고하지 않고, 작별하지 않은 상태"라고 표현했어요. 제목이 바로 거기서 나온 거예요.
(죽은 자들이 아직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산 자들도 그들과 작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담은 제목이에요.)
줄거리는 이렇게 흘러가는데,
소설가 경하는 친구 인선의 부탁으로 제주 빈집의 새를 보살피러 눈보라를 뚫고 가게 돼요.
그곳에서 경하는 인선의 어머니 강정심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정심은 제주 4·3 사건의 피해자이자 생존자로, 4·3 당시 실종된 자신의 오빠를 찾다 생을 마쳤던 사람이에요.
소설은 현재의 경하와 과거의 정심을 교차하면서 전개되는데, 악몽과 환상, 기억이 뒤섞이는 방식으로 서술돼요. 그래서 어떤 장면이 현실이고 어떤 장면이 꿈인지 경계가 흐릿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거든요.
(그 흐릿함이 의도적인 건데,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것, 그게 이 소설이 말하는 애도의 방식이에요.)
결말이 어떻게 끝나는지를 보면,
경하는 정심의 이야기, 그리고 4·3의 이야기를 온전히 마주하게 되는데, 소설은 선명한 해소 없이 조용하게 닫혀요.
누군가 죽었고, 누군가 살아남았고, 살아남은 자들은 죽은 자들과 끝내 작별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 작별하지 못함이 기억이 되고, 기억이 문학이 된다는 것.
소설의 마지막 문장에 닿았을 때 책을 덮기가 쉽지 않아요.
이 소설을 둘러싼 논란도 있는데,
제주의소리에 따르면 제주 출신 문학평론가 고명철은 이 소설이 4·3을 '애도의 서사'로만 수렴시킨다고 비판했어요.
4·3은 단순한 수난의 역사가 아니라 정치적 저항과 항쟁의 역사이기도 한데, 그 부분이 소설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흥미로운 건 한강이 이 소설로 2023년 프랑스 메디치 문학상 외국문학상을 공동수상하면서 세계 문학계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 그리고 제주 현지에서는 '한강의 4·3길'이라는 문학 기행 코스까지 만들어졌다는 것인데,
같은 소설이 한편에서는 비판받고 다른 한편에서는 4·3을 세계에 알린 소설로 기념되고 있는 거예요.
(이 간극 자체가 이 소설이 얼마나 복잡한 텍스트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한강의 3대작을 순서대로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데,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이 세 소설을 순서대로 읽으면 한강이 어떤 방향으로 걸어왔는지가 선명하게 보여요.
채식주의자가 한 개인의 내면을 해부했다면, 소년이 온다는 5·18이라는 역사적 집단의 목소리를 담았고, 작별하지 않는다는 그보다 더 오래되고 더 오랫동안 침묵했던 역사에 닿아요.
나무위키 표현을 빌리면 채식주의자가 한강을 국내외에서 주목할 만한 작가로 부각한 출세작이라면, 작별하지 않는다는 소년이 온다와 함께 한강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세계 문학계의 거장으로 인정받게 만든 진정한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독자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알라딘 독자 서재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반응은 "소년이 온다보다 더 조용한데 더 오래 남는다"는 감상이에요.
소년이 온다가 직접적이고 강렬한 충격을 주는 소설이라면, 작별하지 않는다는 서서히 스며드는 방식이라는 거예요. 읽는 동안보다 다 읽고 나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소설이라는 반응이 많고,
제주 4·3을 잘 몰랐던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고 4·3에 대해 더 알아보게 됐다는 반응도 자주 보여요.
(문학이 역사를 기억하게 만드는 방식이 이 소설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깊게 작동하는 것 같아요.)
작별하지 않는다는 것, 그건 기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이기도 해요.
제주의 3만 명, 그들과 작별하지 않기 위해 한강이 썼고, 그 소설을 읽은 독자들도 함께 작별하지 않게 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