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줄거리 독후감 — 정지아 소설, 빨치산 아버지를 이해하기까지 | 노리노리

아버지의 해방일지 줄거리 독후감 — 정지아 소설, 빨치산 아버지를 이해하기까지

소설의 첫 문장이 이렇게 시작되는데,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읽자마자 뭔가 독특하다는 느낌이 오는데, 아버지가 죽었다는 비극적인 사건을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라는 문장으로 툭 던지듯 말하면서,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강하게 와닿거든요.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예요.


항목 내용
저자 정지아
출간 2022년 9월 (창비)
장르 한국 현대 장편소설
수상 김유정문학상, 심훈문학대상, 이효석문학상
특이사항 전작 《빨치산의 딸》(1990) 이후 32년 만의 장편소설
알라딘 "올해 읽은 책 중 제일 재밌고 강력하다" — 유시민 작가 추천

이 소설이 나오기까지 32년이 걸린 데는 이유가 있는데,

정지아 작가는 1990년 《빨치산의 딸》을 발표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는데, 그 소설이 출간되자마자 판매금지와 기소라는 사건을 겪게 됩니다.

(빨치산이라는 단어 자체가 당시엔 금기에 가까운 단어였으니까요.)

그 후 32년이 지나 같은 주제로 다시 장편소설을 쓴 건데, 알라딘 소개에 따르면 이 소설은 《빨치산의 딸》 이후 초심으로 돌아가 아버지 이야기를 다시 다룬 작품으로, 김유정문학상, 심훈문학대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문학성을 두루 입증받은 '리얼리스트' 정지아가 무려 32년 만에 내놓은 대작이라고 해요.

32년 전에는 판매금지를 당했던 이야기가 2022년에는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것, 그 사이 한국 사회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이 소설 하나가 보여주는 것 같아요.


줄거리는 단 3일의 이야기인데, 그 안에 70년이 담겨 있어요

소설의 현재 시간은 딱 3일이에요. 아버지의 죽음부터 장례를 마치기까지의 3일인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장례식장에 모여드는 사람들을 통해 해방 이후 70년 한국 현대사의 질곡이 생생하게 펼쳐지거든요.

(장례식이라는 공간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소설이 있을까 싶어요. 죽은 자의 삶을 산 자들이 기억하는 자리이니까요.)

화자는 딸 아리예요. 대학 강사로 살아가는 아리에게 아버지는 늘 불편한 존재였는데, 자칭 사회주의자라면서 청소도 안 하고, 바짓가랑이에 붙은 먼지조차 인간의 시원이라며 털지 않는 아버지, 빚보증을 서서 농사를 내팽기치는 아버지였거든요.

그런데 장례 3일 동안 아버지의 옛 동지들이 찾아오고, 아리가 몰랐던 아버지의 다른 면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딸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이미지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해요.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면 이 소설이 더 입체적으로 읽히는데,

아버지 고상욱은 일제강점기가 끝나던 즈음 스물셋 청년으로,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지리산과 백운산을 카빈 소총을 들고 누빈 빨치산이었어요. 그리고 1948년 겨울부터 1952년 봄까지 빨치산으로 활동하다가 이십 년 가까운 감옥살이를 마친 인물이거든요.

그런데 그 무게감 있는 삶의 이력과 달리, 소설 속 아버지는 꽤 우스꽝스러운 면이 많아요. 자칭 유물론자라면서 청소는 안 하고, 사회주의자라는 칭호가 무색하게 노동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어머니에게 이런저런 이유로 늘 구박을 받거든요.

(진지한 이념과 엉성한 일상 사이의 그 간극이 이 소설을 무겁지 않게 만드는 핵심인 것 같아요.)

나무위키에서도 이 소설을 소개하면서 "괜히 울컥하다가 웃음이 나오고 그래서 슬픈데 재미있고,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하나도 부담스럽지 않다"고 표현했는데, 그 말이 정확한 것 같아요.


어머니라는 인물도 이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데,

어머니 역시 평생의 동지이자 사회주의자인데, 아버지보다는 훨씬 현실적인 사람이에요. 그래서 둘 사이에 독특한 티키타카가 펼쳐지는데, 앙숙 같으면서도 유물론과 민족 앞에서는 경건하게 하나가 되는 관계거든요.

이 부부의 관계가 이 소설에서 웃음을 만들어내는 주요 장치이면서, 동시에 이념을 함께 품고 살아온 두 사람의 삶이 얼마나 진지하고 또 얼마나 인간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창구가 되기도 해요.


이 소설이 지금 시대에 읽히는 이유가 뭔지 생각해보면,

빨갱이라는 단어는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서 금기어에 가까웠는데, 그 단어를 가진 아버지를 두었다는 것만으로도 딸 아리의 삶이 얼마나 많이 규정됐을지를 이 소설은 조용히 보여줘요.

그런데 장례 3일 동안 아리가 발견하는 건 아버지가 빨갱이였다는 사실이 아니라, 아버지가 그저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온 한 인간이었다는 거예요.

한 블로그 서평에서 이렇게 표현했는데,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만나는 얽히고설킨 사연들에 빠져들다 보면 그들이 빨갛지도 파랗지도 않은, 그저 저마다의 삶을 꾸려온 사람이었음을 알게 된다고요.

(이게 이 소설이 전하는 가장 큰 메시지인 것 같아요. 이념이 사람을 규정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이념보다 먼저라는 거요.)

2022년에 이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건, 우리 사회가 그 메시지를 받아들일 준비가 어느 정도 됐다는 신호일 수도 있어요. 32년 전에 판매금지를 당했던 같은 이야기가요.


이 소설을 유시민 작가가 추천한 게 화제가 됐는데,

알라딘 소개에 따르면 이 소설은 추석 연휴와 함께 독자에게 닿기 시작했는데, 유시민 작가가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를 예로 들면서 아나키스트 아버지와 아들이 벌이는 코미디물과 비슷한 결의 소설로 추천하면서부터 "올해 읽은 책 중 제일 재밌고 강력하다"는 평과 함께 빠르게 퍼지게 됐어요.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가진 책인 만큼 추천인이 누구냐에 따라 독자층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운데, 그럼에도 이 소설이 다양한 독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게 소설 자체의 힘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독자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알라딘 독자 서재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반응은 "울다가 웃다가 했다"는 감상인데, 묵직한 현대사를 다루면서도 웃음이 나오는 장면들이 교차하면서 독자들이 무게감에 눌리지 않고 끝까지 읽게 된다는 거예요.

성균관대 오거서 리뷰에서는 처음엔 블랙 코미디인 줄 알았는데 아버지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로 변모한다고 표현했는데, 그 장르의 변화 자체가 이 소설의 구조이기도 해요. 아리의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지는 것과 함께 독자가 읽는 이 소설의 결도 함께 달라지거든요.

한편으로는 빨치산, 사회주의라는 소재에 대한 거부감으로 읽기를 망설이는 독자들도 있는데, 실제로 읽어본 독자들 사이에서는 그 우려가 기우였다는 반응이 많아요. 이념 소설이 아니라 가족 소설이라는 거예요.


아버지가 죽고 나서야 아버지를 알게 된다는 이 이야기가, 꼭 빨치산 아버지를 둔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닌 거예요.

살아있는 동안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을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들여다보게 되는 그 경험은, 어쩌면 누구에게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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